ㅡ오늘부터 스포츠에 입덕! 여성 스포테이너 시대의 개막
이번 도쿄 올림픽에서 가장 주목받은 종목 중 하나는 여자 배구 경기이다. 간판스타 김연경을 비롯하여 김희진, 양효진 등 오랜 시간 호흡을 맞춰온 동료들과 친구같이 눈높이를 맞추는 라바리니 감독까지 연일 화제에 올랐다. 남자 배구보다 열악한 지원 속에서도 의미 있는 성취를 달성한 선수들에 대한 전 국민의 관심과 지지가 뜨겁다. 첫 개최 이래 125년 만에 참가선수의 여성 비율 49%를 달성한 이번 올림픽과 흐름을 함께하듯, 국내에서도 운동하는 여자들이 TV에서 자주 보인다!
국가대표가 시켜주는 입덕
아마추어가 확장하는 대리만족
도쿄 올림픽은 막을 내렸지만, 여자 스포츠 선수들을 향한 관심은 뜨겁다. 연예계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은 스포테이너 계보에 최근 여자 선수 출신들도 눈에 띈다. 바로 ‘노는 언니’에 출연하는 박세리, 남현희, 한유미 등이 그 주인공이다. 최근 프로그램 1주년을 맞이하며 시즌 2를 확정했다. 강호동, 서장훈, 현주엽 등 은퇴 후 바로 연예계에서 새로운 정체성을 확립하고자 고군분투한 남자 스포테이너들과 달리 ‘노는언니’에서는 선수, 그들이 가장 잘 알고 잘하는 야외 활동과 운동에 관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끌고 간다. 전혀 상관없는 인생 2막을 연출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세계를 확장하는 기획으로 진정성 있는 콘텐츠를 완성하고 화제성은 저절로 따라온다.
‘노는언니’가 잘 끊은 스타트에 축구하는 아마추어 ‘골때리는 그녀들’이 가세했다. 축구를 처음 하는 여자 선수들의 고군분투 리그전을 담은 콘텐츠이다. 정식 편성 이후 ‘뭉쳐야 찬다’를 훌쩍 넘는 검색량을 유지하고 있다. 둘 다 축구라는 종목에서 파생된 프로그램이지만 출연자 구성과 포맷에서 차별화된다. ‘골때리는 언니들’은 축구 무대에서 배제되고 저평가되었던 여자 플레이어를 발굴하고 하나의 팀이 되어가는 서사를 만든다. 이는 이전의 강압적인 성과주의를 벗어나 이번 올림픽에서 즐거운 4등을 향해 따뜻한 박수를 보내는 대중들과 닿아있다.
왜 ‘운동’하는 여자에 주목하는가!
‘오늘부터 운동뚱’ 같이 재미를 위한 예능뿐 아니라 여성 국가대표의 이야기를 조명한 다큐 ‘국가대표’, 작년에 개봉한 영화 ‘야구소녀’ 등 “운동하는 여자”를 다각도에서 다루는 콘텐츠가 늘어났다. 어쩌다 비주류였던 이 코드가 주목받고 있는 걸까?
#.1 능력치가 보장하는 영향력, “멋있으면 다 언니”
스포츠는 경기를 중계하고 기록을 남긴다. 간혹 논란이 있긴 해도 1등을 구분 짓기 가장 단순하고 명쾌한 방식이다. 노력해서 쌓은 능력치로 증명한 언니들의 이야기는 진정성을 깔고 가는 셈이다. 그리고 그들은 진정성을 담아 소신껏 할 말을 한다. 한국 양궁 3관왕의 주인공 안산 선수는 인터뷰할 때 “제 경기력 외에 관한 질문은 대답하지 않겠습니다”라며 여론에 휩쓸리지 않는 단호한 모습을 보였다. 차분한 경기력과 당찬 모습에 속이 시원해진 사람들은 안산 선수를 팔로우하게 되었다. KBS 다큐 ‘국가대표’에서는 김연경(배구), 박세리(골프), 지소연(축구) 등 세계 정상급 선수들이 직접 몸담은 스포츠계의 불합리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여자가 보이지 않던 필드에서 그 존재감을 만들어간 사람들이 이제는 다음 세대를 위해 그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2 비주류 꼬리표 떼고 ‘여자’에 갇히지 않는 서사 완성
성장점이 뚜렷한 운동의 특징 역시 비주류였던 여자 선수 캐릭터에 더해져 더 드라마틱한 서사를 완성한다. 더 나은 기록을 향해 나아가는 프로든, 처음 도전하는 종목에서 새로운 자세와 기술을 흡수하는 초보든 ‘성장’이라는 코드가 붙는 순간, 청춘 드라마를 방불케 하는 힘이 생긴다. 심지어 나이도 상관없다. 오히려 더 다양한 나이대의 시청자가 공감하고 대리만족할 수 있어 세대를 뛰어넘는 콘텐츠가 탄생한다. ‘골때리는 그녀들’의 주 시청자인 30-50대는 최고령 이경실, 신효범까지 어린 친구들과 함께 뛰는 것을 보며 카타르시스를 얻는다. 어린 시절 체육 시간에 운동장의 9할을 축구하는 남자에게 넘겨주었던 아이들이 다 커서 전력으로 뛰는 모습은 운동이 주는 즐거움, 에너지, 그리고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다. 스포츠 브랜드 ‘나이키’가 소외되었던 여성 플레이어들을 통해 메시지를 던졌던 ‘너의 위대함을 믿어’ 캠페인이 현실이 된 셈이다.
걸-크러쉬가 바뀌었다!
새로운 여성 캐릭터가 평정하는 시대
박세리같이 따뜻하게 후배들을 지원하는 ‘언니 리더십’이나 김연경같이 함께 뛰는 ‘플레잉 리더십’은 국내 여성 스포츠가 비주류 필드에서 주류 콘텐츠까지 올라오도록 이끈 원동력이다. 여성 불모지 영역을 개척하고 남녀노소 모두에게 환희의 순간을 선물했던 선수들은 이제 대중 매체에서 새로운 역할을 맡는다. 더이상 사람들은 강렬한 스타일링에 욕을 하는 ‘쎈 언니’에서 걸-크러쉬를 찾지 않는다. 오늘날 진짜는 이들처럼 능력으로 체육계와 콘텐츠를 평정한, 따뜻한 카리스마를 지닌 여자들이다. 그들은 성별을 떠나 전문성으로 모두에게 인정받고 걸-크러쉬의 새로운 정의를 만든다.
미디어 세계에서 여성의 입지 역시 체육계와 크게 다르지 않았었다. 그러나 여자 예능인의 설 자리가 없다는 이야기가 수면 위에 떠 오른 지 7-8년이 흐른 요즘, 이영자, 박나래, 김숙은 연달아 연예 대상을 수상했고 유투브에서 박미선, 김민경이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이들의 성공비결 역시 미디어에서 그려온 전형적인 여성상을 깨고 새로운 캐릭터로 자리 잡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캐릭터들은 운동하는 언니들처럼 ‘보여줄 수 있는 능력치’와 ‘성장코드가 짙은 서사’를 가지고 있다. 이들은 ‘여자’라는 정체성을 부정하지 않는다. 외모에 대한 고민을 하고, 연애도 한다. 다만 그건 그들의 일부로 라이프스타일, 취향, 철학과 함께 한 캐릭터를 이루는 소스가 된다. 남성들이 독차지했던 전문성 이미지를 획득하고 시대의 흐름과 함께 대중의 공감을 얻은 이들의 활약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운동에서 대중이 열광하는 포인트를 비주류였던 ‘여자’에 적용한 스포테이너는 신선하다. 하지만 이 신선함을 일회용 스타로 소비하기엔 그들이 주는 감동과 의미가 너무 풍부하다. 성장하는 과정과 기록으로 보여주는 능력치와 소신껏 이야기하는 언니 캐릭터는 맥락과 상황에 따라 무궁무진하게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변화한 새로운 걸-크러쉬를 어떤 콘텐츠에 어떤 문법으로 녹여낼지 고민해야 할 시점이 아닐까? 진정성과 공정성을 엄격히 따지는 Z세대뿐 아니라 기존 사회구조에 좌절했던 밀레니얼, 그 윗세대까지 세대통합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 치트키로 롱런하는 콘텐츠를 만들고 싶다면 말이다. 캐릭터가 가장 빛날 수 있는 홈 그라운드를 연출하는 것 또한 잊지 말아야 할 기본이다!
가지 공장 한 줄 평
입덕은 능력치 만렙 국대 언니로, 몰입은 성장하는 아마추어로.
능력치와 성장 코드로 새로운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운동 좀 하는 언니’들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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