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빈집엔 다시 활력을, 빈 일상엔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2014년, 농촌에서 끼니를 차려 먹는 것이 전부인 프로그램 ‘삼시 세끼’가 혜성처럼 등장했다. 그로부터 4년 후엔 20대의 귀촌 생활을 그린 영화 ‘리틀 포레스트’가 개봉하고 바로 농촌 라이프 대명사로 등극한다. 몇 년간 시청률을 거뜬히 책임지던 시골 힐링 코드지만, 예쁘게 꾸며놓은 집이 왜색 논란에 휩싸였던 ‘여름방학’이나 첫 회 이후 점차 떨어지는 시청률과 함께 종영된 ‘일로 만난 사이’를 보면 시골 로망 불패 신화는 옛날이야기가 된 듯하다. 그런데 메스 미디어에서 사라진 그 시골살이가 빈집을 만나 2030의 관심사로 부상하고 있다고?!
살아가는 진짜 시골 이야기
지방 농촌의 비어있는 집으로 밀레니얼이 이주한 콘텐츠가 자주 눈에 띄인다. 그들이 선택한 빈집은 오래되어 보수는 필수지만 독특한 구조와 앞마당을 지니고 있어 확실히 천편일률적인 도심의 아파트와 다르다. 그곳에서 하나씩 고치고 채워가는 계정과 채널이 등장했는데 쌓이는 팔로워와 구독자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코오롱, 반스 등 패션 브랜드와 협업하고 김금희, 한은형 같은 작가들의 책 표지를 포근하게 완성한 일러스트레이터 곽명주. 그 인스타그램 계정에는 작업의 모티브가 되는 풍경, 여행 사진이 종종 업데이트되곤 했는데, 거기에 직접 시골집 리모델링하는 포스팅이 추가되었다. 자연에서 영감을 얻는 직업 특성상 작업 환경을 자연으로 둘러싸인 제주의 빈집으로 옮긴 듯하다.
1주년을 맞은 유투브 채널 ‘오느른’ 역시 MBC PD의 4,500만 원짜리 폐가 프로젝트를 담고 있다. 28만 구독자를 차곡차곡 모으는 동안 다큐로 TV 편성을 받았고 책 한 권이 세상에 나왔다. 4,500만 원 폐가에 5,100만 원을 더해 완성한 한옥이지만 여전히 평균 10억을 웃도는 서울 집값에 비하면 30대 직장인에겐 괜찮은 선택지 같아 보인다. 내부 누수공사, 아버지의 이주, 펭수와의 콜라보 등 날 것에서 시작한 잔잔바리 에피소드가 어느새 속이 꽉 찬 콘텐츠가 되었다. ‘무계획이 계획’이었다는 오느른은 이제 시골살이에서 나아가 동료를 더 구해 오피스, 카페 등을 차리면 새로운 시도로 확장된다.
전국 팔도로 내몰리는 시골살이?
원거리에서도 통하는 크리에이터 전성시대
순수하게 시골 생활을 동경해서 귀촌을 꿈꾸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2030이 전국의 빈집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에 아무래도 경제적인 이유가 빠질 순 없다. 눈뜨면 올라있는 서울 집값, 그에 준하는 수도권, 만만치 않은 제주 시내, 요즘 떠오르는 강원도까지. 관광 인프라에 젠트리피케이션을 피하려면 점점 도심과 멀어지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서울에서 내 집 마련을 못한다고 모두 농촌을 빈집을 찾아 헤매지 않는다. 어떻게 시골 빈집에 밀레니얼 세대가 다다르게 된 걸까?
전 국민이 크리에이터가 될 수 있는 시대를 맞이한 오늘. 2030의 대리만족을 책임지는 시골 빈집 콘텐츠는 월세, 전세에 갇혀 나만의 공간을 꾸밀 기회조차 박탈당한 이들에게 실현 가능한 기회를 시연하는 장이다. ‘귀촌 = 농사’ 공식은 깨진 지 오래, 이제 시골 빈집은 비대면 서비스 허브, 콘텐츠 메이킹 장소, 지역 문화사업, 자영업 등 하고 싶은 일을 시도해 볼 수 있는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품고 있다. 시작부터 남들과 다른 차별화 된 배경을 갖게 되고, 청년 인구가 적어 골머리를 앓는 자치단체에서는 이런 움직임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기도 한다. 브랜딩 되면 SNS와 입소문을 타고 사람들이 찾아오기 때문에 물리적 거리에도 불구하고 기회는 있다. ‘진정성 있는 시골로망을 전개할 수 있다면’이라는 전제가 붙기는 하지만.
이런 현상은 이제 시작이다. 지금 빈집을 기웃거리는 밀레니얼 세대는 모두가 성공의 정석을 향해 달려가던 윗세대들과 달리 열정을 펼칠 공간이 ‘서울’이어야 할 필요를 못 느낀다. 코로나가 장기화되면서 많은 사업군에서 비대면 시스템이 빠르게 갖추어진 것도 빈집 이주가 가능해진 이유이다. 심지어 그 다음 주거 시장의 트렌드를 주도할 주자는 Z세대, 본 투 비 크리에이터들이다. 이주 과정부터 정착, 새로운 장소에서 다시 시작하는 생활까지 콘텐츠로 뚝딱 만들어내고 그 과정을 고생이 아닌 자신만의 공간에 대한 투자로 인식한다.
그리고 빈집으로 하는 비즈니스!
관심은 있지만, 선뜻 도전하기에 꽤 장벽이 높은 빈집 이주, 그 다리 역할을 하는 비즈니스도 생겨났다.
전남 목포 원도심에 위치한 ‘괜찮아 마을’은 도시 청년들이 쉬러 왔다가 일군 마을이다. 특색있는 식당과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며 도심에서 멀어져 쉬고 싶은 2030을 타게팅한 일주일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다. 해당 프로그램을 방문했다가 정착하는 사례까지 생겼다고. 그들만의 커뮤니티를 단단히 만들어나가면서 지방 생활에 뿌리를 내리고 그 풀을 넓혀나가는 중이다. 이러한 사례를 바탕으로 전국 지방자치단체에서 추진하는 청년 마을 사업도 활발해졌다.
지역 전통과 공예를 더해 부여 자온길을 조성한 박경아 대표, 그가 확장한 방향성은 세간 TV이다. 부여의 빈집을 소개하고, 구매자를 찾고, 하나씩 고쳐나가는 이 유투브 채널은 오래된 한옥의 뼈대를 다시 찾아내고 남겨진 전통을 줍는 노하우를 보여준다. 부동산 중개업자가 아니지만, 지방의 빈집의 특수성 때문에 접근이 어려운 부분을 해소해주는 역할을 하는 셈. 천천히 성장하는 구독자 수는 만 1년도 되지 않은 시점에 이미 8 천명을 넘겼다. 빈집으로 골머리를 앓는 지역이 부여뿐이 아닌 만큼 전국의 빈집 수요와 공급을 이어줄 수 있는 체계적인 플랫폼이나 네트워크의 생겼을 때 성장 가능성이 옅보이는 대목이다.
혹은 아예 빈집을 서비스로 풀어내는 방법도 있다. 일본의 ADDress는 빈집을 리모델링해서 1년 단위로 전국에 있는 160여 개 지점을 메뚜기처럼 옮겨 다닐 수 있는 공간 비즈니스를 운영한다. 2019년, 그 시작은 5개 숙박시설의 크라우드 펀딩이었는데 모집인원 30명을 훌쩍 넘어 1,100명이 응모했다는 후문이다. 여기에 합류한 밀레니얼들은 4.4만엔 월세에 ‘빈집 - 워킹 노마드’의 공급과 수요가 딱 맞아 탈동경의 꿈을 가장 쉽고 적은 예산으로 실현할 수 있게 되었다. ‘지방’에 위치한 ‘빈집’이기 때문에 발생할 문제들을 해결한 이상적인 모델이다.
지방에 있는 빈집에서 원하는 것이 과연 자연인처럼 단절되고 자연에 날로 노출된 삶일까? 오늘날 빈집을 검색하는 2030들이 꿈꾸는 것은 시골살이 로망에 힙한 감성을 채우면서 새로운 문화와 라이프스타일을 개척하는 것이다. 짜여진 일상을 굴리는 것에서 벗어나 비정형 공간에서 만들어가는 움직임들은 초 연결시대와 맞물려 경험하고 싶은 문화가 되어간다. 오늘의 집 집들이보다 드라마틱하고 다양한 전개의 빈집 리모델링을 한데 모아 콘텐츠로, 플랫폼으로, 유사체험까지 확장해나간다면, 지금은 시장의 유무조차 희미한 빈집 비즈니스가 블루오션으로 거듭날 수 있지 않을까?
가지 공장 한 줄 평
-인터넷만 된다면 어디든 갈 수 있는 시대, 당신의 빈집은 어디에 있나요?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