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 아바타와 애착 인형 그 사이의 인형 키링
최근 Z 세대의 OOTD에 인형 키링이 핫한 패션 아이템이 되었다. 그냥 ‘인형 뽑기 기계에서 뽑은 걸 달고 다니나보다’라고 생각하면 오산! 팝업스토어 오픈런과 키케팅(키링+티켓팅)은 기본이고 최소 4만 원이라는 높은 가격임에도 정가의 3배로 리셀 될 정도이다. 고작 키링 하나가 이렇게까지 인기가 많아진 이유가 무엇일까?
인형 키링계의 3대장
인형 키링 트렌드의 시작이라 여겨지는 라이프스타일숍 모남희의 블핑이 키링이 대표적이다. 김나영, 차정원 등 셀럽들의 인스타그램의 자주 등장해 인기를 얻었으며 팝업스토어 때는 오픈 2시간 전에 이미 대기번호가 400번대를 넘겼을 정도. 온라인 판매의 경우도 여전히 1분 만에 솔드아웃 되는 게 다반사로 키케팅의 정석으로 여겨진다. 에스실, 크림, 카멜 커피 등 타 브랜드와 콜라보 한정판 상품도 활발히 출시하며 20만 원에도 리셀 되는 핫한 아이템이다.
하찮은 생김새만으로 성급하게 판단하지 말아주세요! 그레이맨션의 타조 키링은 이래 봬도 주문 후 한 달 이상은 기다려야 받을 수 있는 귀한 몸이다. 핸드메이드 제품이라 컬러 패턴이 랜덤한 것과 민들레 홀씨 같은 재질감이 포인트. 처음 볼 때는 ‘이게 뭐야’ 하다가 이 하찮음에 스며들었다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특히 토끼 모자, 헤어 집게, 바캉스 세트 등 다양한 꾸미기 아이템을 함께 구매할 수 있는데 어렸을 때 인형놀이하듯 꾸며주는 맛이 있다고 알려지며 품절 대란을 이어가고 있다.
Z 세대 사이 핫한 패션 브랜드인 마뗑킴에서도 토끼 인형 키링을 출시했다. 원래 팝업 스토어 리미티드 에디션이었지만 미친듯한 리셀과 수요로 인해 온고잉 아이템으로 변한 케이스이다. (그래도 여전히 자주 품절되지만...) 특히나 한정판 콜라보 상품으로 이슈몰이를 톡톡히 하고 있는데 가발, 비니, 티셔츠와 함께 출시되어 다나카의 미니미 그 자체였던 콜라보 제품이 바이럴 됐었다. 최근에도 멜빵과 가발로 꾸밀 수 있는 Y2K 아이돌 한정판 제품을 출시해 또 한 번 인기를 높이고 있는 중이다.
Z 세대의 위시리스트에 입성한 인형 키링의 챠밍포인트
얼핏 보면 이전의 캐릭터 인형 키링들과 크게 다른 점이 없어 보이는데, 도대체 요즘 인형 키링의 어떤 점이 Z 세대의 소비 욕구를 자극하는 것일까?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지금 유행하는 키링을 좀 더 해체 분석할 필요가 있다.
#.하찮아? 작고 귀엽고 무해해!
요즘 인기 주가를 갱신하고 있는 인형 키링들의 필수적인 공통점이 있다. 왠지 모르게 ‘하찮다’라는 느낌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일단 키링이다 보니 일반적인 인형보다는 크기가 작고 삐쭉 삐쭉한 털, 그리고 이건 있다고 해야 하는지도 애매한 망충한 이목구비로 무해한 느낌을 준다. 세대를 막론하는 아묻따 키워드인 ‘작고 귀엽고 무해함’이 인형 키링의 주된 바이럴 요인인 것이다. 그리고 이 ‘작고 귀엽고 무해함’이라는 키워드는 최근 몇년 전부터 Z 세대를 공략하기 위해 꼭 알아야 할 중요한 키워드가 되었다. 이들에게 아이돌급의 인기를 자랑하는 푸바오 컨텐츠와 최고심이나 망그러진 곰같이 하찮미를 뽐내는 캐릭터들이 콜라보 마케팅으로 연일 활용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즉, 현재 키링의 인기는 그냥 키링이 아닌 ”인형“ 키링이라는 점이 핵심이며 이는 곧 무해하고 순수한 콘텐츠에 열광하는 Z 세대의 성향이 반영된 것이다.
#.내 맘대로 커스마이징
인형 키링의 유행 속 새로운 현상도 나타났으니 바로 인형 키링 자체를 꾸미는 것이다. 이는 곧 ‘별다꾸족’이라 불리며 커스터마이징을 디폴트 값으로 생각하는 Z 세대의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해석될 수도 있지만 키링 꾸미기는 다른 별다꾸 트렌드와는 좀 결이 다르다. 별다꾸의 대표적인 예시인 다꾸나 신꾸의 경우 예쁘고 귀여운 아이템으로 꾸미는 것에 그치는 반면 인형 키링 꾸미기는 단순히 귀여운 아이템을 넘어 샤넬처럼 명품 로고가 달린 목걸이나 가방 등 자신들의 현실 위시 리스트에 있는 아이템들을 키링에 장착시킨다는 점이다. 또한, 오리지널 제품이 아닌 에스실x모남희 에디션이나 마지셔우드 23 티셔츠 에디션과 같이 한정판 아이템이 세팅되어 있는 키링이 더 높은 인기를 얻는다. 이는 현실에서는 어려운 명품과 한정판 제품을 소비하고픈 마음을에 투영하여 대리만족을 느끼는 모습으로, 이들에게 인형 키링은 별다꾸템을 넘어 나의 취향과 니즈를 담아내는 존재에 가깝다.
#. Z 세대의 덕력 자극
이렇듯 인형 키링이 점점 핫해지며 소위 인형 키링 위시 리스트까지 만들며 수집하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키링을 덕질한다고?’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Z 세대에게 덕질은 단순히 아이돌의 팬이 되는 것이 아닌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깊게 파고드는 것으로, 무엇이든지 덕질이 가능하다. 게다가 요즘의 키링은 이들이 덕질하기 더할 나위 없는 조건을 가졌다. 우선 대부분의 제품이 핸드메이드인데, 수작업의 특성상 풀리는 수량이 소량이거나 프리오더로만 구할 수 있다. 이는 곧 남들이 가지지 못한 희소적인 것을 선호하는 Z 세대에게 스니커즈와 다를 바 없는 새로운 한정판 아이템인 것이다. 그리고 인형 키링이 점점 핫해지면서 다양한 브랜드에서 키링을 출시하는 것도 또 다른 이유가 된다. 특히나 Z 세대가 좋아하는 브래드인 마뗑킴이나 마지셔우드의 키링은 단순한 패션 아이템이 아닌 굿즈로서 취향을 나타내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아이템인 셈이다.
나의 취향과 스타일을 대변해 주는 또 다른 나, "아바타"
이 세 가지 특징을 잘 들여다보면 지금 유행하는 인형 키링은 실제 열쇠고리로서의 역할보다는 참의 역할로서 사용되고 있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참이란 주로 물건에 다는 장식으로 행운을 가져다줄 것으로 믿는 ‘작은 부적’처럼 사용된다. 즉, 나의 스타일과 취향을 대변해 주는 소중한 아이템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나의 스타일과 취향을 대변해 주는 존재? 어딘가 낯설지 않다. 이 단어는 온라인상에서는 ‘아바타’라는 단어로 불리운다 (아바타: 온라인상에서 자신의 분신을 말하는 것). 지금 유행 중인 인형 키링 역시, 예쁘게 꾸미고 주변인들에게 자랑하는 모습은 그 차이가 온라인이냐 오프라인이냐만 다를 뿐, 거의 비슷한 형태를 보이고 있다.
오프라인 아바타를 넘어, 애착인형으로 발전
그렇다면 왜 Z 세대는 온라인에서도 오프라인에서도 아바타라는 존재에 열광하는 것일까? 디지털 네이티브라 불리며 그 어떤 세대보다 가상세계가 익숙하고 여기에 빠져있는 Z 세대, 이들에게 아바타란 팍팍한 현실을 벗어나 마음껏 나를 표현할 수 있는 또 다른 소중한 존재이다. 남들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고 현실의 나와 얼마나 닮았는지도 전혀 중요하지 않다. 나의 다른 자아를 표현할 수도 있으며 아예 새로운 자아를 만들어 버려도 상관없는 것이다.
이런 환상적인 존재가 온라인을 벗어나 오프라인에서 “인형 키링”을 통해 표출되고 있다. 메타버스 속 아바타와 달리 실제로 내가 매일 만질 수 있고 가지고 다닐 수 있다는 장점까지 더해져서 말이다. 하지만 멋진 외모에 화려한 옷차림을 하고 있는 제페토 아바타와 몬스터처럼 망충한 눈코입에 폭신폭신한 털로 이루어져 있는 인형 키링은 달라도 너무 달라 보인다. Z 세대가 정말로 오프라인 아바타로서 인형 키링을 소비한다면 오히려 바비처럼 늘씬하고 미적 요소가 강조된 인형들이 인기여야 맞지 않나?
이점에서 볼 수 있는 인형 키링의 또 다른 본질은 바로 “애착 관계를 가진 인형”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무해하게 생긴 폭신폭신한 털 인형이면서 항상 나와 함께 인형 키링은 아이들이 온종일 가지고 다니는 애착 인형을 생각나게 한다. 이른바 내가 되고 싶은 모습이 투영되는 것을 넘어 그 망충한 눈을 맞추며 하루 종일 쳐다보고 만지고 싶은, 어린 시절 애착 인형과 사랑에 빠졌을 때로 돌아가 버린 것이다. 이 이유만으로 용돈을 쏟아붓고 샤넬백 대기 줄만큼 기다릴 이유가 충분해진다.
Z 세대의 네버랜드 신드롬 속 애착템 찾기
이들이 키링을 아바타를 넘어 애착 인형처럼 생각하는 현상은 Z 세대의 기저에 깔린 네버랜드 신드롬 때문이다. 네버랜드 신드롬은 순수하고 걱정 없던 어린 시절을 회상하고 나이 들기를 거부하며 취향 중심 소비를 통해 행복을 추구하는 성향을 의미한다. 불황에 불황을 더한 지금, 소위 가장 불안하고 우울한 세대로 알려진 Z 세대가 우울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행복의 과몰입을 즐기는 성향을 가지게 된 것이다. 이런 이들에게 제페토에 있는 내 메타버스 캐릭터에 구찌 옷을 입히고, 에어팟 맥스를 키링으로 주렁주렁 꾸미는 건 이상한 것이 아닌 즐거운 것이며 한정판 제품을 소유하고 자랑하며 덕질하는건 어엿한 즐거운 취미이다.
스티커를 모으고 애착 인형을 가지고 논다고, 성숙해지는 걸 거부한다고 이들을 마냥 철없다고 할 수 있을까? 현실에서 조금 벗어나 심리적 애착을 통해 조금 더 나를 돌볼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더 성숙한 행동이 아닐까? 작은 비용으로 일상 속 행복을 찾고, 그러면서 나의 취향과 개성을 표현할 수 있는 애착템들은 앞으로 더 많이 등장할 것이다. 그게 지금은 “인형 키링”처럼 패션의 형태로 유행하고 있지만 앞으로 F&B와 인테리어 같은 카테고리까지 확장될 수 있다. 지금처럼 불황이 계속되는 한 네버랜드로 되돌아오는 이들은 더욱더 늘어나게 될 것이니 말이다.
가지 공장 한 줄 평
ㅡ 네버랜드를 동경하는 Z 세대가 소비할 넥스트 애착템이 궁금하다면 이들의 놀이터인 아이디어스를 확인하는 것도 방법이 될 것이다!
깜찍이들이 세상을 구한다 like 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