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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나현

Z 세대의 새로운 플렉스, 올드머니

- 시간과 관리를 동경하는 Z 세대


패션 시장을 장악했던 Y2K 트렌드와 상반된 올드머니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현재 틱톡에서 #oldmoney는 조회 수 100억 회 이상이며 인스타그램 관련 포스팅은 100만 건이 넘는다. 이뿐만이 아니다. 패션 플랫폼 29CM에 따르면 지난 7월 한 달간 올드머니 룩의 주요 소재인 캐시미어, 실크 등의 검색량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20% 증가하였고 올드머니들이 애정 한다고 알려진 이탈리아 명품 패션 브랜드 로로피아나는 니트 한 장에 200만 ~ 300만 원대임에도 매출이 전년 대비 40%가 늘어났다.


SNS에 점점 증가하는 올드머니 관련 콘텐츠 (출처: 틱톡, 인스타그램)

이처럼 뜨거운 인기를 얻고 있는 올드머니 룩이란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자산을 상속받은 ‘올드머니(Old Money)’들의 전통적이고 고급스러운 패션을 뜻한다. 부를 과시하지 않고도 우아함과 럭셔리함을 보여주는 것이 핵심으로 로고 플레이보다는 좋은 원단의 클래식한 디자인과 뉴트럴 컬러감으로 이뤄진 것이 특징이다.


올드머니 룩의 정석을 보여주는 올드머니 AI 모델 Feli (출처: Feli 인스타그램)

미국에서부터 시작된 올드머니 트렌드는 현재 가장 인기 있는 HBO 드라마 ‘석세션(Succession)’의 영향이 가장 크다. 상류층 재벌들의 권력 싸움을 다룬 이야기가 주 소재이지만, 연일 화제가 된 건 이들의 패션 스타일이다. 드라마 속 주인공들의 착장을 보면 테일러링 팬츠와 클래식 셔츠, 와이드 팬츠에 넉넉한 맨투맨, 그리고 화이트 스니커즈, 로퍼, 드라이빙 슈즈 등 좋은 소재와 뉴트럴한 컬러, 로고 없는 디자이너 제품을 매치하는 90년대 클래식한 아메리칸 프레피 스타일이 대부분이다.


올드머니 룩 인기의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는 석세션. 따로 패션 인스타그램까지 생겨났다 (출처: Succession 인스타그램)

이들의 올드머니 룩과 함께 언급되는 브랜드로는 질샌더(Jil Sander), 까날리(Canali), 보디(BODE), 랄프 로렌 (Ralph Lauren), 르메르(LEMAIRE), 더 로우(The Row), 코스(COS), 아르켓(ARKET) 등 디자이너 브랜드부터 SPA 브랜드까지 다양하다.


(출처: Canali, Ralph Lauren, COS 인스타그램)

브랜드뿐만 아니라 올드머니 룩을 소화하는 셀럽들도 주목을 받고 있다. 인플루언서 겸 모델인 소피아 리치의 경우 최근 재벌 2세와의 화려한 결혼식과 승마, 요트 등 상류층의 일상 스타일로 올드머니의 정석이 되었다. 영화배우 기네스 펠트로는 스키 뺑소니라는 소송 내용보다 카키색 코트, 화이트 가디건, 회색 재킷 로고는 없지만 고급미가 넘치는 그녀의 법정 룩이 더 주목을 끌며 올드머니 룩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켰다.


왼쪽부터 소피아 리치, 기네스 펠트로, 다이애나의 올드머니 룩 스타일 (출처: Sofia Riche 인스타그램, People, Vanity Fair)

또한, 찐 올드머니인 영국의 전 왕세자비 다이애나도 올드머니 룩 스타일링 참고에 가장 많이 언급되고 있는 대표적인 페르소나이다. 이외에도 화려한 글래머 스타일의 대표주자였던 제니퍼 로렌스, 카일리 제너, 헤일리 비버 등이 차분하고 고급 진 스타일링으로 변화하며 올드머니 룩에 대한 관심은 나날이 높이고 있다.


올드머니 룩의 인기 배경

이러한 올드머니 룩의 인기는 최근 시장 전반에 불고 있는 소박한 럭셔리, 조용한 럭셔리라고 불리는 트렌드와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른바 엔데믹 이후 부의 양극화와 경제 불황, 소득 불공평이 가져온 현상으로, 라이프스타일 전반에 영향을 끼치는 커다란 흐름 중 하나이다. 그리고 이 현상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면 크게 3가지 요소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1.뉴머니에 대한 반감

원래 뉴머니는 신기술로 자수성가한 부자들을 지칭하는 단어였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인플루언서와 코인 부자들이 나타나면서 사람들은 가능성과 동경보다는 박탈감과 무력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SNS에 통해 명품 가방과 고급 시계, 오마카세, 호캉스 등 소비를 과시하는 문화에 질리기 시작했고, 인플루언서들의 가짜 명품 이슈는 이제 조롱거리가 되고 말았다. 그렇다 보니 오랫동안 검증되어 온 진짜 부자들, 선대 때부터 승계된 올드머니를 모방하고 선망하게 된 것이다.


2.지속적인 가치

또한 자고 일어나면 바뀌는 트렌드 변화 속도와 시시각각 쏟아지는 관련 콘텐츠의 양에 거부 반응을 일으키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도 주목할 부분이다. 이제 사람들은 언제 인기가 사그라들지 모르는 로고 플레이보다 타임리스 가치에 걸맞은 세련된 소재의 클래식한 스타일을 더 선호한다. 더 나아가 올드머니 아이템들은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스타일이라는 점에서 환경 이슈에 민감한 요즘 세대에게 합리적이고 지속성이라는 가치를 가진 의식적인 쇼핑으로 생각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


3.90년대 노스탤지어

경기 불황 속 미니멀리즘이 꽃을 피웠던 90년대에 대한 향수도 빠질 수 없다. 실제로 90년대 인기 브랜드인 프라다, 미우미우, 질샌더의 제품이 다시금 인기를 얻고 있는데, 이는 엔데믹 이후 오른 물가와 금리 때문에 최소한의 것만 소유하고 절약해야 하는 지금과 90년대 경제 불황의 시대가 많이 닮아있기 때문이다. 양보다는 질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클래식한 빈티지 명품을 구매하려는 성향이 짙어지고 가성비 좋은 럭셔리 베이직 제품을 더 선호한다. 믹스 매치가 어려운 화려한 패션보다는 올드머니 룩이 더 따라 하기도 쉽고 가성비가 좋은 선택지가 되는 것이다.


Z 세대의 새로운 플렉스 소재, 올드머니

이렇듯 올드머니 룩은 대부분 경제적인 상황과 밀접하게 관련이 되며 시장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지금 이 트렌드를 이끌고 있는 중심이 이제 막 경제력을 갖추기 시작한, 90년대 미니멀리즘은 경험하지도 않은 Z 세대라는 점이다. 실제로 현재 경제 불황과 소득 불평등을 가장 크게 느끼는 세대는 Z세대로, 이들이 올드머니 룩의 트렌드를 이끄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플렉스 컬처와 핑크 일색의 바비코어, 화려함과 키치함의 끝인 Y2K에 흠뻑 빠져있던 이들이 갑자기 모두 인텔리 병에 걸린 듯 지적이고 시크한 스타일로 바뀌게 된 이유가 모두 경제적 불안에만 있을까? 그리고 정말 Z 세대는 돈보다 지속적인 가치에 더 중점을 두는 것일까?


Z 세대가 빠져있던 Y2K 스타일 (출처: 제니, 태연, 뉴진스 인스타그램)

물론 시작은 경제 불안에 있지만 그 이면을 다시 들여다보면 결국 부를 과시하는 방법이 바뀌었을 뿐,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다. 실제로 인플루언서를 뉴머니로 여기며 더 이상 따라 하지 않겠다고 하면서 올드머니 룩 역시 인플루언서들을 통해 번지고 카피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뉴머니에서 올드머니로 플렉스하는 소재가 달라진 것이지 여전히 Z 세대는 부를 과시하며 남들과 다른 자신을 뽐내는데 여념이 없다. 다만 이제는 졸부 스타일의 뉴머니보다 재벌 3세들의 올드머니가 더 멋있게 보일 뿐이다.


올드머니의 핵심은 돈이 아닌 경험

하지만 이런 올드머니 룩은 절대 아무나 따라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베이직한 코디로 쉬워 보이지만 자칫하면 일 잘하는 대기업 팀장님 패션 혹은 현실 적응 못한 공대 복학생 스타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올드머니 룩의 핵심은 브랜드의 헤리티지에 대한 지식, 고급 소재의 올바른 케어 방법, 베이직한 아이템 속 숨은 디테일을 찾아낼 수 경험 등이 굉장히 중요하다.


올드머니 룩 대표 인플루언서 (출처: @hoskelsa @clairerose@amaliemoosgaard @liestudio_ 인스타그램 )

플렉스, 이제는 '시간과 관리'이다

즉, ‘시간’과 ‘관리’라는 키워드가 올드머니 룩의 핵심이며, 이 두 가치는 현재 Z 세대에게 있어 새로운 플렉스 소재로서 큰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이들은 화려하고 빠르게 드랍되는 요즘 제품보다 느리고 구하기 힘든 과거의 제품이 더 좋은 품질을 보장하고 장인 정신이라는 특별함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지속 가능하고 내구성이 뛰어난 소재의 제품에 기꺼이 지갑을 열며 이것이 가격 인상의 이유일 때도 합당하게 받아들인다.


실제로 해외 콘텐츠들에서 말하는 올드머니 룩이란 질 좋은 원단을 사용한 우아한 의상을 넘어 풍성한 머릿결과 윤기나는 피부, 여유로운 태도 등 전체적인 분위기를 포함하고 있다. “New Money shouts, but Old Money whispers(돈이 떠들 때 부는 속삭인다)”라는 표현처럼 올드머니 룩의 핵심은 로고로 티를 내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우아함과 여유로운 아우라이다. 즉, 지금 이들이 선망하는 건 ‘귀티’인 것이다. 그리고 ‘귀티’는 돈으로 살 수 있는 게 아닌 타고난 여유와 경험이 필요로 한다. 한마디로 ‘시간과 관리’가 필수적이다.


해외에서 단순한 패션이 아닌 옷, 분위기, 취미 등을 아우르는 미학(Aestehtic)과 태도 등이 포함된 올드머니 (출처: Pinterest, Old Money Luxury 유튜브)

집 사는 것도 판타지라고 생각하는 요즘 Z 세대에게, 주말에 바다로 요트를 타러 나가고 승마와 폴로 같은 경기를 즐기는 3대 금수저의 라이프 또한 신기루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이들이 이런 라이프스타일이 담긴 올드머니 룩을 동경하는 진짜 이유는 ‘시간적 여유’ 때문이다. 올드머니들이 캐시미어나 울 같은 관리가 까다로운 원단의 옷을 입어도 태가 나고 피부와 머릿결이 아름다운 건 관리를 의미하고, 이 관리는 시간을 내서 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관리가 가능한 올드머니의 시간적 여유가 만들어낸 귀티야말로 지금 Z 세대가 심취한 새로운 플렉스이다.


돈이 아닌 시간적 여유를 동경하다

슬프게도 하루를 쪼개 미라클 모닝과 오운완 등 챌린지를 통해 갓생을 사는 Z 세대에게 시간과 관리는 돈보다 더 큰 가치이다. 불안정한 외부 환경 속 오직 내가 컨트롤할 수 있고 활용할 수 있는 건 시간밖에 없기 때문에, 현실 속 상속받을 재산은 없어도 올드머니가 가지고 있는 시간적 여유만큼은 꼭 가지고 싶은 동경의 대상이 되었다.


올드머니는 시간과 관리라는 중요한 속성을 지닌 채 앞으로 패션을 넘어 보다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에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이미 뷰티 쪽에서는 이제 안티에이징 대신 젊을 때부터 꾸준한 관리를 노화를 늦추고 예방한다는 개념의 영 안티에이징과 슬로우에이징이라는 개념이 주목을 받고 있으며, 인테리어 쪽에서도 빈티지 가구와 홈 데코에 대한 관심이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올리브영의 슬로우에이징 캠페인과 올드머니 인테리어를 잘 보여주는 랄프 로렌 홈 (출처: CJ 뉴스룸, 랄프 로렌 유튜브)

또한 90년대 미니멀리즘의 대표 디자이너와 상품들의 귀환이 눈에 띄게 늘어나면서 예전 오리지널 제품을 복각하여 새롭게 출시하는 형태의 컬렉션들도 많이 생겨날 것이다. 1980~90년대 스타들이 신고 다니던 모델을 현대적으로 복각해 큰 인기를 얻은 아디다스의 가젤과 삼바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최근 다시금 인기를 얻은 1950년과 1966년 출시된 모델인 가젤과 삼바 (출처: adidas originals, 제니, 김나영 인스타그램)

이처럼 브랜드들은 새로운 것을 만들기보다는 과거 브랜드 아카이브를 다시 열어보고 그 안에서 오리지널 제품을 리뉴얼 하여 출시하는 방향을 고려하는 것이 좋을듯하다. 그것이 지금 소비 시장을 이끄는 Z 세대들에게 더 매력적인 플렉스 소재이기 때문이다.



가지 공장 한 줄 평


ㅡ 90년대 패션 잡지를 다시 꺼내보자. 그 안에 Z 세대의 지갑을 열 브랜드 혹은 아이템이 숨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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