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마카세 베리"와 "기적의 토마토"
한때 그로서리 스토어가 엄청난 인기를 끌며 트러플 감자칩, 밤잼 등의 고급 식료품을 장바구니에 담기 바빴다면 이제는 딸기와 토마토 등 농산물이 그 자리를 넘보고 있다. 마트에서 무게를 달아 과일과 채소를 사는 시대가 지나고, SNS을 통해 내 취향에 맞는 농산물을 직접 찾아 구매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사과주스와 다양한 사과를 판매하고 있는 선암파머스, 귤로 시작해 시트러스 브랜드로 인기를 끌고 있는 귤메달, 에어룸이라는 독특한 컨셉을 설정한 그래도팜 등이 대표적인 사례로 이들은 마트가 아닌 자체 쇼핑몰을 운영하면서 29cm에 입점되어 있고, 여의도 더현대에서 팝업스토어를 연다. 6차 산업*으로 확장되고 있는 농업 비즈니스는 지금 가장 핫한 시장이다. 대부분 예쁜 디자인과 높은 완성도의 콘텐츠로 브랜드를 구축하고 있으며, 온라인을 기반으로 기존 보수적인 유통 채널을 넘어서 새로운 유통 채널과 마케팅을 접목하여 젊은 세대들에게 소구한다.
*6차 산업: 1차 산업인 농업을 2차 가공 산업 및 3차 서비스업과 융합한 농업의 종합 산업화를 뜻하는 단어
이른바 농산물의 브랜딩 시대이다.
하지만 이제 막 태동기를 지난 국내와는 달리 로컬 농산물 브랜드 구축이 이미 어느 정도 자리 잡은 해외 시장에서는 최근 들어 더 혁신적인 사례들이 보이고 있다.
이제 농산물도 플렉스
1.딸기계의 테슬라, Oishii
비즈니스 매거진 Fast Company에 2022년 가장 혁신적인 회사 중 하나로 뽑힌 농산물 브랜드 오이시(Oishii). 오이시는 미국 뉴저지에 위치한 전 세계 최대 규모의 수직 딸기 농장에서 일본산 품종 딸기를 재배한다. 수직농장*이라는 하이-테크적인 환경에서 딸기를 재배하는 것이 특징이지만, 정작 이들이 딸기계의 테슬라라는 별명을 얻은 이유는 엄청난 기술력 외에도 8알에 50달러 (약 5만 원)라는 비싼 가격에도 불구, 대기자 명단이 생길 정도의 인기 때문이다. 2017년 회사를 설립한 후 3년 동안 매출이 10배 이상 증가했을 정도였다. 이들이 생산하는 프리미엄 딸기는 “오마카세 딸기”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실제 미국에 위치한 미슐랭 가이드 선정, 유명 레스토랑에서 후식으로 제공된다. 수직농장의 버블 논란에도 꾸준히 투자를 유치하여, 최근 뉴욕 근교에 도쿄돔 규모의 수직농장을 추가로 건설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를 통해 가격을 낮추고 오마카세 베리 외에도 루비 토마토라는 고급 방울토마토 작물을 추가로 런칭 하는 등 현재 가장 주목을 받는 기업이다.
*수직 농장: 흙을 사용하지 않고 물과 영양분만 사용하여 농작물을 재배하는 친환경적 아파트형 농장
2.기적의 토마토, Osmic First
특수 토양을 실험하던 중에 우연이 토마토의 품질과 맛이 매우 좋아진 점에서 착안하여 시작된 방울토마토 전문 브랜드 오스믹 퍼스트(Osmic First). 마켓컬리에서 500g에 7,000원 정도 하는 방울토마토가 250g에 약 10만 원에 판매되고 있음에도 한정수량으로 준비한 7,000상자가 금방 매진이 될 정도로 현재 일본에서 가장 인기 있는 프리미엄 농산물 브랜드이다. 생산되는 토마토의 당도는 모두 10Brix 이상 (일반 방울토마토의 경우 6 ~ 7 Brix)인 것만 판매하며, 일반 토마토에 비해 GABA* 함량이 약 4배 정도 높아서 기능성 식품으로 인가된 최초의 토마토이기도 하다. 그래서 맛 외에도 피부 미용과 스트레스 케어용으로 판매되고 있다. ‘OSMIC FIRST’시리즈는 당도 11Brix의 토마토인 ‘프린세스(PRINCESS)’, 당도 12Brix의 토마토 ‘퀸(QUEEN)’, 그리고 전체의 0.1%의 수량 밖에 생산되지 않는 당도 13Brix의 토마토 ‘그랜드 퀸(GRAND QUEEN)’ 3종류의 라인업이 있다. 2020년에는 초고가 토마토를 활용하여 마치 와인병을 닮은 11만 원 토마토 주스를 선보여 화제가 되었는데, 최근에는 냉동식품, 외식 사업 등으로 브랜드를 확장해나가며 독자적인 토마토 식경험을 제공한다.
*GABA: 두뇌에 활력을 주는 아미노산 물질
두 사례 모두 일반 사람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가격대임에도 불구, 없어서 못 팔 정도이며 연일 사람들의 뉴스에 오르내린다. 물론 기존에도 과일계의 에르메스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샤인머스캣이나 파리지앵을 꿈꾸는 인플루언서들의 피드에 등장하던 납작 복숭아와 같이 독특하고 이국적인 품종의 과일들이 인기를 끄는 건 늘 있었던 일이다. 하지만 우리들 식탁에서 쉽게 오르내리는 딸기와 방울토마토가 이렇게 비싸게 팔릴 일인가?
초고가 농산물 브랜드의 조건
물론 오이시의 딸기와 오스믹 퍼스트의 방울토마토가 과일의 절대적 맛의 기준인 브릭스에 있어 일반 딸기나 방울토마토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은 것은 사실이다. 실제로 오스믹 퍼스트에서 가장 단 토마토인 그랜드 퀸의 경우 당도가 애플망고와 비슷한 수준이라고 한다. 하지만 맛으로만 프리미엄을 논하기 어렵다. 그렇게 때문에 이 두 브랜드가 이렇게 놀라운 가격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섹시하게 들리는 혁신적인 기술
기존에는 프리미엄 농산물이 되기 위해서 친환경과 유기농을 빼고 말하기 어려웠다. 수많은 농수산물 브랜드들이 앞다투어 얼마나 친환경적인 방법으로 농산물을 재배했는지 말했는데 집중했다면, 이 두 브랜드는 당당하게 그 자연을 극복하는 기술에 대해 이야기한다. 오이시는 미래의 농업이라 불리는 토양과 태양을 인공적으로 구축한 수직농장에서 딸기를 재배하고, 오스믹 퍼스트는 화학비료 없이 자체 개발한 흙을 사용해 온실에서 토마토를 키워낸다. 넓은 농원에서 땀 흘리는 농부의 모습이 아닌 완벽하게 통제된 온실 속 과학자의 연구실에 가까운 모습으로 마치 미래에서 온 먹거리처럼 홍보한다.
오이시의 경우 본인들을 홍보할 때에도 딸기계의 테슬라, 일론 머스크라는 단어를 서슴없이 사용한다. 기술이 더해졌을 때 사람들이 더 호기심을 가지고 플러스 가격을 낼 것이라는 걸 잘 파악한 똑똑한 선택이다. (고작 츄리닝에 불과하지만, 빨지 않아도 되는 신소재를 사용했기 때문에 더 미래적이고 친환경적이라는 컨셉으로 비싼 값을 받고 있는 패션 브랜드 판게아를 떠오르게 한다.)
#식재료 그 이상, 미식으로 소비
오이시 딸기와 오스믹 퍼스트 방울토마토의 또 다른 특징이 있다면 바로 독특한 제품명이다. 오이시의 경우 “오마카세” 딸기라는 제품명으로 사람들에게 큰 인상을 남겼다. 실제로 뉴욕에 위치한 다양한 미슐랭 레스토랑의 디저트 메뉴로 서빙되면서 단순히 일반적으로 맛있는 딸기를 넘어 프리미엄한 미식을 경험할 수 있는 딸기라는 스토리를 전하고 있다.
오스믹 퍼스트는 “기적의 토마토”라고 말하며 일반 방울토마토의 당도가 6~7인데 비해 월등히 높은 당도 11 이상의 제품만을 선별해 프린세스, 퀸, 그랜드 퀸이라는 이름을 붙여 최고의 당도를 가진 토마토만을 선사하는 데 초점을 둔다. 이는 오마카세와 파인 다이닝을 즐기고, 트러플과 캐비아를 작은 사치로 소비하는 식문화 트렌드와도 연결된다. 과일을 파는 것이 아니라 미식을 팔고 있는 것이다.
#선물하고 싶고 선물 받고 싶은
오이시의 홈페이지나 인스타그램을 보면 마치 패션 브랜드 홈페이지를 보는 것과 같은 착각이 든다. 세련된 화보 사진과 감도 높은 각종 영상들이 눈을 사로잡기 때문이다. 오스믹 퍼스트 또한 백화점에 입점한 오프라인 매장은 웬만한 디저트 부티크와 비교해도 지지 않는다.
이뿐이 아니다, 이 두 브랜드 모두 패키징에 많은 공을 들였는데 마치 보석 상자를 연상하게 하는 것이 특징이다. 일반적으로 풍성하고 먹음직스럽게 포장되는 농산물 패키징의 불문율을 깨고 하나하나 정성을 다해 포장된 선물용 수제 쿠키 혹은 마카롱을 연상하게 한다. 그렇기 때문에 파인애플, 멜론, 망고와 같은 큰 과일이 아닌 딸기나 방울토마토같이 작은 한입 과일이 초고가 농산물 브랜드에 잘 어울린다. 과일을 우리에게 익숙한 입가심용 후식 과일이 아닌 선물하기도 좋고 받기도 좋은, 럭셔리 디저트로 포지셔닝한 것이다.
달콤한 판타지, 농산물계의 티파니를 꿈꾸다
검정 비닐봉지로 구매하던 딸기와 방울토마토와는 태생부터가 다른 아이들이 탄생했다. 이 아이들은 태어난 환경부터가 금수저이다. 농약과 해충으로부터 완벽하게 통제된 깨끗한 환경에서 자라는 것은 물론 24시간 케어를 받는다. 품종은 최상급이며 과일 맛의 척도인 당도 역시 최상급이다. 재배된 후에는 영롱한 패키지에 담겨 연예인과 인플루언서들의 화려한 디저트로 소비된다.
즉, 이들은 기존 농산물과 경쟁하고 있지 않다. 이들의 경쟁상대는 티파니이다.
농산물 주제에 티파니라니, 하지만 바로 이 점이 사람들이 열광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혹자는 ‘그래봤자 딸기이고 방울토마토가 아니냐’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이 팔고 있는 건 과일이 아닌 “판타지”이다.
1800년대 뉴욕 신흥 부자들의 보석에 대한 욕망으로 탄생한 티파니. 이들의 시그니처 컬러인 ‘티파니 블루’는 여성들이 보기만 해도 심장 박동이 22%나 상승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을 정도로 모든 여성들의 마음을 설레기에 하는 특별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즉, 티파니 반지와 함께 하는 프로포즈는 로맨스에 대한 판타지를 완성시키는 중요한 요소인 것이다.
오이시와 오스믹 퍼스트도 높은 품질의 프리미엄 과일을 판매하고 있다고 하지만 실제로 소비자는 ‘달콤함에 대한 판타지’를 구매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가격은 터무니없이 비싸야 하며 수량은 작아야 하고, 포장은 화려해야 한다. 맛 역시 단순히 달다가 아닌 크리미한 맛, 향긋한 아로마, 부드러운 텍스처와 같은 다양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풍부한 팔레트를 제공해야 한다. 마치 티파니 블루 컬러를 생각만 해도 떨리는 것처럼, 딸기와 방울토마토를 생각만 해도 설레게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브랜딩과 마케팅의 전쟁터가 된 농업 비즈니스, 휴먼 다큐를 넘어 판타지를 팔아야...
농산물 시장은 이미 빠르게 바뀌고 있다. 농산물 구매에 있어 초신선을 가장 중요한 선택 요소로 생각했던 소비자들은 이제 중간 유통 업체가 없어도 24시간 언제 어디서든지 생산자와 직거래가 가능하다(인스타그램으로 DM을 보내고 바로 다음날 농부가 직접 딴 사과를 받을 수 있다). 온라인과 SNS는 이처럼 생산자인 농부에게 새로운 가능성의 시대를 열어주었지만, 한편으로는 치열한 마케팅 전쟁에 뛰어들게 만들었다. 소비자들은 또 어떤가, 단순히 영양을 채우기 위해 농산물을 구입하지 않는다. 내 취향이 반영된 농산물을 찾기 위해 폭풍 검색을 마다하지 않는다.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 그 접점을 찾기란 쉽지 않다.
앞으로 농산물 시장은 더 치열해질 것이고 고부가가치 창출은 점점 더 중요해질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국내에서 이 두 브랜드와 같이 농산물 브랜드 중 화장품이나 패션처럼 부가가치를 극대화한 사례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오이시와 오스믹 퍼스트 사례는 이런 시장의 변화 속 농산물 브랜딩에 있어 새로운 관점을 제안한다. 휴먼 다큐로 완성되던 기존 농산물 브랜딩에서 이제 좀 더 새로운 접근과 시각이 필요하다. 몇 대째 이어져 온 가족농업, 청정한 재배지, 특별한 품종 외에도 브랜드의 최고 레벨인 명품을 만들기 위해서 농산물에 어떻게 판타지적인 요소를 넣을 수 있을지 고민해봐야 할 때이다.
가지 공장 한 줄 평
ㅡ 농산물에 프리미엄을 더하고 싶다면, 과일이 아닌 보석을 판다고 생각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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