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중도 입덕하게 만든 자컨, 팬 콘텐츠의 대중화
최근 유튜브 콘텐츠 ‘나영석의 나불나불’에서 배우 정유미가 아이돌 가수 세븐틴 입덕기를 공유했다. 세븐틴의 자컨* ’고잉 세븐틴’을 알고리즘에 의해 보니 멤버 13명의 이름을 외우고 입덕까지 하게 되었다는 썰. 실제로 세계적인 스타가 된 BTS와 8년 차 보이그룹 세븐틴은 자컨이 만든 아이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K-Pop 팬덤 플랫폼 블립에 따르면 세븐틴 팬덤 중 59.5%가 고잉 세븐틴을 본 후 입덕했다고 밝혔을 정도다.
*자컨: 자체 제작 콘텐츠의 줄임말로 기획사 측에서 아이돌의 일상을 담은 리얼리티나 예능들을 자체 제작해 내놓은 콘텐츠
이처럼 자컨은 요즘 아이돌의 필수 콘텐츠로 자리 잡았다. SM의 신인 그룹이자 지금 가장 핫한 아이돌 ‘라이즈'는 데뷔 6일 만에 자컨이 업로드 되었고, 아이브, 르세라핌은 물론, 데뷔 9년 차의 몬스타엑스도 올해 자컨 ‘몬먹어도 고’를 런칭하며 그 중요성을 증명하고 있다. 하지만 자컨이 갑자기 떠오른 건 아니다. K-Pop의 성장에 이미 자컨은 늘 함께 해왔기 때문이다.
자컨의 성장기
#.1세대 자컨
1990년대~2000년대 자컨은 리얼리티 예능 혹은 스타 다큐 장르가 대부분으로 ‘god의 육아일기’, '리얼다큐 빅뱅’, ‘2NE1TV,’, ‘소녀 학교에 가다’ 등이 대표적이다. 방송사와 함께 기획 및 송출되는 형태로 아이돌의 데뷔나 활동 비하인드를 보여주는 전형적인 팬 서비스 콘텐츠였다. 하지만 TV 매체의 한계로 인해 자컨이라고 하기엔 ‘자체’의 비중이 현저히 낮고, 멤버들의 솔직한 모습을 기대하기 어려웠다는 단점이 있었다.
#.2세대 자컨
2010~2020년대에는 유튜브와 네이버 V앱 등 영상 플랫폼이 활성화되면서, 아이돌 기획사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미디어팀을 구성, 지금과 같은 형태의 자컨을 송출할 수 있게 되었다. 대표적인 성공 케이스가 BTS의 ‘달려라 방탄’과 세븐틴의 ‘고잉 세븐틴’이다. 자체 제작이 가능해진 환경으로 인해 완성도 높은 자컨의 원형이 완성되었고, 유튜브를 통해 글로벌 팬까지 소구하는 콘텐츠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이다.
#.3세대 자컨
2020년부터는 멤버들만 출연하는 게 아니라, 아이돌이 호스트가 되는 새로운 포맷의 자컨이 많이 등장하고 있다. ‘아이유의 팔레트’, ‘슈가의 슈취타’, ‘이영지의 차쥐뿔'이 대표적으로 다양한 게스트가 등장하면서 아티스트의 팬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콘텐츠가 되었다. 이는 웹 예능이 TV 예능보다 좀 더 선호되는 현상이 반영된 결과이기도 하다. 실제로 아이돌이 컴백할 시 ‘아는형님’이나 ‘주간아이돌’과 같은 TV 프로그램보다 ‘문명특급’, ‘할명수’, ‘차쥐뿔’과 같은 웹 예능을 더 선호하며, 자컨은 팬들을 위한 서비스 콘텐츠에서 하나의 프로그램 콘텐츠로 자리 잡기 시작하였다.
자컨의 성장 배경
이렇듯 자컨의 시작은 팬들만 챙겨보는 서비스 콘텐츠에 가까웠지만, 지금은 머글(팬이 아닌 일반인을 지칭하는 덕질 용어)까지 챙겨보는 어엿한 콘텐츠가 되었다. 과연 자컨이 이렇게까지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은 뭘까?
1.전통 매체의 하락, 뉴미디어 공략
자컨의 성장에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은 바로 뉴 미디어의 등장과 콘텐츠 플랫폼의 재편이다. OTT, 유튜브, 틱톡과 같은 새로운 콘텐츠 플랫폼들이 기존 TV의 자리를 대체하며, 기획사에서 만든 자컨은 보다 자유롭게 팬들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자사 아티스트를 특화 시킨 콘텐츠를 원하는 시간대에 언제든지 송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특히 뉴미디어 특성상 소재나 편집에 제약이 없기 때문에, 자컨은 진입장벽이 높은 팬 콘텐츠가 아닌 아이돌이 등장하는 웹 예능으로 대중에게 보다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었다.
2.전문 프로덕션 시스템의 등장
요즘 자컨은 더 이상 팬 서비스 콘텐츠가 아니다. ‘고잉 세븐틴'의 경우 제작에 참여하는 평균 스태프만 약 30명으로 웬만한 방송국 예능 제작팀과 맞먹는 스케일을 자랑한다. 실력 있는 PD와 작가들이 합류했다는 소식도 심심치 않게 들려올 만큼 프로페셔널한 인력들이 자컨 제작에 투입되고 있다. 이런 탄탄한 제작팀이 생기며 콘텐츠의 퀄리티뿐만 아니라 업데이트되는 양도 늘어났다. 스트레이 키즈의 경우 데뷔 이후 이틀에 1개꼴로 콘텐츠를 업로드하며 보이 그룹 역사상 3번째 다이아 버튼을 획득하기도 했다. 이제는 기획력이 딸리면 아무리 팬이지만 날선 댓글을 서슴지 않을 만큼 상향 평준화되며 머글이 봐도 인정해 줄 만한 콘텐츠로 자리 잡은 것이다.
3.완벽한 세계관 구축
원래는 활동기가 끝나면 더 이상 덕질할 콘텐츠가 사라지기 때문에 공백기 기간 동안에는 언제나 탈덕의 위험이 있었다. 하지만 유튜브 자컨을 통해 공백기 없는 무한 콘텐츠 공급이 시작했다. ‘고잉 세븐틴’의 경우도 초기에는 활동기에는 자컨이 휴식기를 가지고 비활동기에는 자컨이 업로드되며 양질의 떡밥을 쉴 새 없이 뿌렸었다. 또한, 자컨의 소재들도 각 그룹의 매력을 극대화하고 팬들이 좋아하는 포인트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아티스트들의 무해하고 순수한 매력과 그 속에서 보여지는 케미가 입덕 및 덕질 포인트이다. 이런 포인트들은 각 아이돌들이 가진 세계관을 잘 보여주며 이들의 브랜딩을 완성시킨다.
4.숏폼, 공유, 그리고 확산
요즘은 덕질도 디지털로 한다. 짤방을 만들고 유튜브 채널을 개설해 팬 브이로그, 무대 영상 편집본 등 최애의 모습을 널리 널리 알리는 것이 팬의 도리가 되었다. 이런 디지털 덕질 문화 속 자컨은 팬들의 니즈를 충족시켜주는 훌륭한 소스가 된다. 실제로 자컨이 한번 업로드되면 숏츠와 릴스를 퍼다 나르며 최애 모먼트를 공유하기 바쁘고 교차편집, 댓글 모읍집, 멤버 케미별 영상 등 관련 콘텐츠가 쏟아진다. 이런 팬들의 2차 콘텐츠는 곧 해당 자컨의 알고리즘과 연결, 각 콘텐츠마다 또 하나의 덕질 세계관을 만들며 출구 없는 그들만의 세상을 만들어낸다.
자컨이 열어준 새로운 시장, 한류
이러한 자컨의 성장은 곧 한류, 그중에서도 K-Pop의 세계화에 엄청난 기여를 하고 있다. JYP가 원더걸스로 아무리 두드려도 쉽게 열리지 않았던 북미 시장의 문은, 이제 BTS가 발표하는 음악마다 빌보드에 오르는 것처럼 너무 쉬워 보이는 문이 되었다(정말 어려운 일이고 정말 놀라운 일이다). 그들의 뛰어난 실력과 노력도 분명 있지만, ‘달려라 방탄’이 없었다면 과연 지금의 BTS의 전 세계적 인기가 만들어질 수 있었을까?
최근 북미, 유럽 시장의 벽을 K-Pop이 허물기 시작한 데에는 판권 판매와 앨범 수출이 대부분이었던 유통 물량의 시절을 넘어 OTT 플랫폼과 디지털 스트리밍의 활로가 완전히 열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안에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은 한국형 자컨이 자리 잡고 있다. 클릭 한 번으로 아프리카에서도 편집된 ‘뮤직뱅크’와 ‘달려라 방탄’을 볼 수 있는 시대에 한국 아이돌의 성장 서사와 친근한 예능 포맷의 자컨은 글로벌 팬들도 쉽게 입덕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준다. 자컨으로 입덕해 공연 영상까지 가게 만드는 완벽한 시나리오가 만들어진 것이다. 특히나 글로벌 팬들의 경우 언어의 장벽으로 인해 뮤직비디오나 무대 영상 밖에 즐기지 못해 K-Pop이라는 큰 장르의 팬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치밀한 한국 기획사의 자컨으로 인해 글로벌 팬들에게도 꾸준한 떡밥 공급해 팬덤으로 유입시키고, 쉽게 떠날 수 없게 만드는 락인 효과를 만들어낸 셈이다.
또한 아이러니하게도 모든 공연이 중단되었던 팬데믹 시절, 방구석에서 유튜브로 시간을 때워야 했던 수많은 예비 덕후들이 자컨을 보게 되면서 새로운 시장이 만들어진 것이기도 하다. 국내의 경우 신곡이 발매되면 뮤직비디오는 물론 음원, 녹음 비하인드 등 모든 콘텐츠를 유튜브에 올리는 게 당연하지만 일본은 저작권 문제로, 중국은 정치적인 이슈로 유튜브를 멀리했었다. 이에 반해 한국의 적극적인 유튜브 활용은 팬데믹 기간 동안 새로운 콘텐츠를 찾아 헤매는 글로벌 콘텐츠 방랑자들의 눈에 띄게 되며 자컨의 성장과 K-Pop 한류에 주요한 역할을 하였다.
특히 각 아이돌들이 팬들과 소통하는 위버스, 디어유 버블과 같은 플랫폼이 구축되면서 3세대 이후 아이돌 그룹들은 그 어느 때보다 전 세계 팬들과 직접적인 교류가 가능해진 것도 큰 영향을 끼쳤다. 실제 현재 가장 독보적인 팬 플랫폼인 위버스의 경우 자컨은 다국어로 동시 번역되어 업로드되며 실시간 채팅창도 다국어 지원이 되어 전 세계 팬들이 함께 즐길 수 있다. 종종 아티스트가 없어도 팬들끼리 덕심을 주고받느라 정신없는 상황이 생기기도 할 정도이다. 즉, 아티스트와 팬을 넘어 팬과 팬을 연결하는 글로벌 덕질 커뮤니티가 완성된 것이다.
지금 가장 매력적인 콘텐츠, 자컨
세븐틴의 유튜브 계정 구독자 수는 현재 1020만 명으로, 이들의 채널은 뮤직비디오, 안무 연습, 녹음실 비하인드, 멤버 브이로그 등 그야말로 콘텐츠 창고이다. 이뿐이 아니다, 더 나아가 위버스 플랫폼에도 라이브 영상, 확장판 등 콘텐츠가 수두룩하다. 유튜브와 위버스는 세븐틴에 관한 모든 것들이 기록되어 있는 아카이브이자 대형 플랫폼인 셈이다. BTS는 더 말할 것도 없다. 대표적인 유튜브와 콘텐츠가 만든 글로벌 아이돌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틱톡에서 정국이 12.4M 팔로워 수를 달성했는데, BTS가 단체 활동을 하지 않은지 꽤 되었지만 팬은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더 늘어가고 있는 추세이다. 이는 차곡차곡 쌓여있는 플랫폼 속 수많은 콘텐츠들이 기존 팬들이나 늦덕(늦게 입덕한 팬)이 입덕 후 빠져나갈 수 없는 굴레를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아티스트의 성장 서사, 팬들을 향한 진심 어린 이야기, 팬끼리 소통이 기록된 채팅창, 이 모두가 콘텐츠가 되고 이는 다시 새로운 글로벌 팬을 양산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이른바 자컨을 통해 전통적인 레거시 미디어에 기대지 않고 아티스트 본인의 채널로 대중을 끌어당겨 락인하는 강력한 브랜딩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는 것이다. 브랜딩에 있어 이제 종교 다음으로 강력한 결과물로 아이돌 팬덤을 꼽는 건 이제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이다.
앞으로 자컨은 아티스트의 아카이브 채널로서 알고리즘을 타고 온 가벼운 관심을 팬으로 만들어주는 강력한 락인 효과를 하는 것은 물론, 기존 래거시 미디어와 새로운 OTT 채널들과 함께 대중의 관심을 끌어내는 보다 융합적인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방탄소년단과 세븐틴의 ‘인더숲’은 JTBC 본 방송과 자체 팬 플랫폼 위버스에 확장판 VOD를 독점 공개하면서 큰 수익을 낸 사례로 유명하다. 레거시 미디어를 피해 글로벌 플랫폼으로 간 자컨이 역으로 TV 채널에 진출한 것은 굉장히 이례적이며 상징적이다 (‘달려라 방탄’의 일부 에피소드는 2018년부터 3년째 Mnet과 JTBC 등 방송사에서 특집 편성되었고 ‘고잉 세븐틴’도 몇몇 편이 JTBC에서 방영되었다).
자컨의 영향력이 앞으로 점점 커지면 유튜브를 넘어 글로벌 자본과 함께 대규모로 제작되어 기획 초기부터 글로벌 팬을 겨냥, 넷플릭스와 디즈니 플러스까지 진출하게 되는 것도 예상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앞으로 기획사에서는 아이돌 기획 단계부터 철저한 전략 아래 멤버들 케미를 구상하고 이를 자컨의 핵심으로 삼아야 한다. 여기에 완벽한 자체 제작 팀을 구현하여 퀄리티 확보에 심혈을 기울여야 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또한, 위버스, 버블처럼 실시간으로 아티스트와 소통이 가능한 플랫폼이 강력해지면서, 이들 플랫폼에서 실시간 스트리밍 형태의 참여형 자컨들이 4세대 자컨으로 생겨날 수도 있다.
소수가 아닌 대중, 국내가 아닌 글로벌, 자컨의 순기능
자컨은 이제 더 이상 소수의 팬만을 위한 콘텐츠가 아니다. 전 세계적인 플랫폼을 통해 잠재되어 있는 대중을 팬으로 이끄는 역할을 하는 창구이자, 아티스트와 팬이 함께 자생하는 새로운 팬덤 생태계를 만드는 지금 가장 매력적인 브랜딩 도구이다. 또한, 방송사처럼 다른 미디어에 의존하지 않은 자체적인 생존력 있는 자컨을 가진다는 건 아티스트에게도 중요한 이슈가 될 것이다. 아이돌 수명이 짧은 것을 감안하면 독립적인 콘텐츠인 자컨에서 자기만의 캐릭터를 만들어 이를 통해 새로운 연예계 활동 분야를 찾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피할 수 없는 긴 휴식기를 가져야 하는 보이 그룹의 경우 군 제대 후 새로운 역할을 찾을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가지 공장 한 줄 평
ㅡ 그래, 나 캐럿이다, 다 됐고 '고잉 세븐틴' 한 번만 봐주세요. 진짜 덕통사고 당한다는 데 제 오른손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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